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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Good thinking)

좋은 생각(Good thinking)
류광식-대기자

지인(知人)의 권유로 어떤 사업(事業)의 세미나에 참석(參席)을 했는데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필자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그 꿈은 이루지는 못했지만 군대(軍隊) 교관이나 영어(英語) 강의(講義) 등의 일을 통해서 간접적(間接的)으로 쪼금이지만 꿈을 이루게 된 것도 감사(感謝)하고 있다.
어떤 학생이 길을 가다가 머리가 하얀 노인(老人)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김 아무개라 합니다. 너무 뵙고 싶었습니다. 저를 기억(記憶) 하시겠어요?”
선생님은 그 학생을 기억은 못 했지만, 자기 제자(弟子)인 것을 알고 “자네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고 물었는데 “저도 선생님을 본받고 싶어서 선생(先生)이 되었습니다.” 노인은 “잘했네. 그런데 무슨 일로 나에게 인사(人事)를 하는가?”
제자가 “저는 선생님의 은혜를 입어 선생님과 같은 선생님이 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그날, 저는 친구의 고급시계가 너무 갖고 싶어 친구(親舊) 몰래 제 주머니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선생님께 일렀고, 선생님은 곧바로 저희들을 모으고 교실(敎室)에 어깨동무를 하고 빙 둘러 서 있게 하시고는 저희들의 주머니를 뒤지셨고, 제 차례가 왔을 때 제 주머니에서 시계를 가지고 가셨는데도 선생님은 끝까지 다른 친구들의 주머니도 뒤졌습니다. 검색(檢索)이 끝나고, 선생님은 친구가 잃은 시계를 찾아서 그 친구에게 돌려주시고서는 졸업(卒業)할 때까지 훈계조차도 아니 하셨고 저에게도 한 마디도 안하셨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절대로 남의 물건(物件)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며, 선생님 같은 훌륭한 선생이 되기로 마음을 다지고 학업(學業)에 최선을 다해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날 일이 기억나지 않으세요. 선생님? 저를 모르신단 말씀이십니까?”하고 질문(質問)을 했지만, 선생님은 “그래 그날 시계를 찾기 위해 너희들의 주머니를 뒤진 일은 기억을 한단다. 하지만 너는 기억(記憶)이 안 난단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으시고 생각에 잠기셨다가는 제자의 어깨를 토닥이며 “애야 … 사실, 그날에 나도 너희들을 눈감으라 한 후, 나도 눈을 감고 너희들의 주머니를 뒤져서 누가 시계를 훔쳐간 사람인지 몰랐단다. 어찌 되었던, 부족한 나를 본받아 선생 된 것이 참 자랑스럽고 고맙구나”라고 말씀 해 주셨다는 강사(講士)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 또 감동(感動)을 했던 기억이 나서 오늘 칼럼을 써 내려간다.
우리 인간(人間)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적(人格的)이고 귀(貴)한 존재(存在)이며, 우주에서 하나 밖에 없는 나이기에, 강제적 물리적(物理的) 힘으로 굴복시키려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은 백발이 된 스승의 은혜(恩惠)를 받아 비뚤어진 길을 갈 뻔한 제자를 훌륭한 선생님으로 변화(變化)를 시키신 것이다.
오늘 이 시간 필자(筆者)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혹은 단톡에서 읽었던 이야기 혹은 독자가 이미 아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읽고 필자가 감동을 받아 지방자치(地方自治) 칼럼에 쓰는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 졌으면 좋겠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약간은 시원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가을 열매를 잘 익히기 위해 남은 늦더위이니만큼, 이 글을 읽으시는 지자체 단체장님부터 모든 독자(讀者)들과 가정(家政)에 좋은 일만 많이 있기를 기원한다.

  1. 사랑의 골든타임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평생(平生) 동안 3가지 질문(質問)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1) “그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2) “그대에게 가장 중요(重要)한 일은 무엇인가?”
3) “그대에게 가장 값진 시간(時間)은 언제인가?”

이 질문에 대해 ‘톨스토이’는 정답(正答)까지도 우리에게 말해 준다.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지금 그대와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그대가 하고 있는 일이다.”
“가장 값진 시간은 지금 당신(當身)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선행(善行)을 베푸는 일이다.”
‘톨스토이’가 여행 중 한 주막(酒幕)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주막집에는 몸이 아픈 딸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톨스토이가 가지고 있던 빨간 가방이 좋아 보였는지 그 가방을 달라고 졸라댔다.
‘톨스토이’는 그 빨간 가방에는 짐이 있고 지금은 여행 중이라 줄 수 없으니,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러서 주겠다고 아이에게 약속했다.
얼마 후 여행을 마치고 약속대로 그 아이에게 가방을 주려고 주막집에 들렀을 때, ‘톨스토이’는 그가 떠난 뒤 그 아이가 곧바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톨스토이’는 그 아이의 무덤을 찾아가 '비석(碑石)'에 한 글귀를 새겼다.
“사랑을 미루지 마라!”는 말이었다. “인간이 알몸으로 태어나는 이유는 이 세상에 충만(充滿)한 사랑으로 생존(生存)할 수 있기 때문이고, 알몸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체험하고 쌓은 사랑을 모두 이 세상에 그대로 놓아두고 가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일(來日)은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을지 모른다. 쉽지는 않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이 바로 ‘사랑할 때’이다.
“가장 값진 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

  1. 어떤 사람의 새 엄마와 내복 세벌 이야기

내가 열두 살 되던 해 이른 봄, 엄마는 나와 오빠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당시 중학생인 오빠와 초등학교 5학년인 나를 아빠에게 부탁한다며 눈물짓던 마지막 울 엄마!
남겨진 건 엄마에 대한 추억(追憶)과 사진 한 장이었는데 엄마는 사진 속에서 늘 같은 표정(表情)으로 웃고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엄마의 몫까지 채워가며 우리 남매를 길러야만 했다. 그게 힘겨워서였을까?
중학생(中學生)이 되던 해 여름 아빠는 새엄마를 집으로 데려왔다. “엄마라고 부르라”는 아빠의 말씀을 우리 남매는 따르지 않았다.
결국, 생전(生前) 처음 겪어보는 아빠의 매타작이 시작되었고, 오빠는 어색하게 “엄마”라고 겨우 목소리를 냈지만, 난 끝까지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니 부를 수 없었다. 왠지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돌아가신 진짜 엄마는 영영(永永) 우리들 곁을 떠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종아리가 회초리 자국으로 피멍이 들수록 난 입을 앙다물었다.
새엄마의 말림으로 인해 매타작은 끝이 났지만, 가슴엔 어느새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새엄마를 더 미워하게 되는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다. 내 방에 있던 엄마 사진(寫眞)을 아빠가 버린다고 가져가 버린 것이다.
엄마 사진 때문에 내가 새엄마를 더 받아들이지 않는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때부터 새엄마에 대한 나의 반항(反抗)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새엄마는 분명 착하신 분이었다.
그러나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적개심(敵愾心)은 그 착함마저도 위선(僞善)으로 보일 만큼 강렬했다. 난 언제나 새엄마의 존재(存在)를 부정(否定)하였다. 그해 가을 소풍날이었다.
학교 근처 계곡으로 소풍을 갔지만, 도시락을 싸가지 않았다. 소풍(消風)이라고 집안 식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되고 모두들 점심을 먹을 때, 계곡 아래쪽을 서성이고 있는 내 눈에 저만치 새엄마가 들어왔다. 손에는 김밥 도시락이 들려있었다. 뒤늦게 이웃집 정미 엄마한테서 소풍이라고 전해 듣고 도시락을 싸 오신 모양(模樣)이었다.
난 도시락을 건네받아 새엄마가 보는 앞에서 계곡물에 쏟아버렸다. 뒤돌아 뛰어가다 돌아보니, 새엄마는 손수건을 눈 아래 갖다 대고 있었다.
얼핏 눈에는 물기가 반짝였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증오(憎惡)와 미움 속에 중학시절(中學時節)을 보내고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고입 진학상담을 해야 했다.
아빠와 새엄마는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가까운 인근의 인문고 진학을 원하셨지만, 난 산업체 학교를 고집하였다. 새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기 싫었고, 하루라도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결국, 내 고집대로 산업체(産業體) 학교(學校)에 원서를 냈고 12월이 끝나갈 무렵 경기도에 있는 그 산업체로 취업을 나가기로 결정(決定)됐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 가방을 꾸리는데 새엄마가 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정말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결심(決心)했다.
경기도에 도착해서도 보름이 넘도록 집에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 산업체 공장생활(工場生活)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낯섦이 조금씩 익숙해져 갈 무렵 옷 가방을 정리하는데 트렁크 가방 맨 아래 검은 비닐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누군가 가방 속에 넣어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봉투 속에는 양말과 속옷 두벌 그리고 핑크빛 내복 한 벌이 들어있었다. 편지(便紙)도 있었다. 가지런한 글씨체, 새엄마였다.
두 번을 접은 편지지 안에는 놀랍게도 아빠가 가져간 엄마 사진이 들어있었다. 새엄마는 아빠 몰래 엄마사진을 간직했다가 편지지속에 넣어서 내게 준 것이다. 이제껏 독하게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며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동안 쌓였던 감정(感情)의 앙금이 눈물에 씻겨 내렸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그날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첫 월급을 타고 일요일이 되자, 난 홍천(洪川)행(行) 버스를 탔다.
밤새 눈이 많이 내려 들판에 쌓여있었다. 아빠, 엄마 그리고 새엄마의 내복, 새엄마 아니 엄마는 동구 밖에 나와 날 기다리고 계셨다.
빗자루가 손에 들려진 엄마의 뒤에는 훤하게 아주 훤하게 쓸린 눈길이 있었다.
“새엄마! 그 동안 속 많이 상하셨죠? 이제부턴 이 내복(內服)처럼 따뜻하게 엄마로 모실게요.” 아직도 말로 못 하고 속말만 웅얼거리는 나를 어느새 엄마의 따뜻한 두 팔이 감싸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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