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대전시 유성구 여성단체가 주관하는 포럼에 참석하게 되었다. “선배(先輩)시민(市民)”이라는 주제를 화두(話頭)로 시작되었는데, 대구 동구 마을 평생교육 지도자 모임에서 이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서 더욱 관심이 집중(集中)되었다. 내용을 듣다보니 내나이 62세, 나의 남은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용은 이렇다.
몇 년 전부터 선배 시민이라는 제목으로 강의(講義)를 하는 교수가 있다. 바로 유범상 교수이다. 그는 방학 중에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의 일상은 이상이 일상이 되도록 상상하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일로 채워져 있다.
유범상 교수님 특강 중에 나온 내용을 중에 ‘노인(老人)에 대한 철학 얘기’를 정리해보자. 이글은 선배시민 담론에 대한 유범상 교수의 특강 내용을 요약(要約) 정리한 글이다. 그는 시민 담론에서 한국에는 3종류(種類)의 노인이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종류의 노인은 늙은이이다. ‘늙은이’다.
그다음 두 번째가 어르신이다, 세 번째는 액티브 시니어다. 이렇게 3종류의 노인으로 분류(分類)한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든, 노인이 되든 가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빵과 장미이다. 빵은 의식주(衣食住)이다.
1900년대 초에 시카고의 여성 노동자들 나와서 데모를 하고, 거리 행진을 하는데 이 행진을 보면서 제임스 오펜하임이라는 시인이 시를 썼는데. ‘빵과 장미’라는 시다. 그리고 오펜하임은 이들이 외치는 것은 ‘빵을 달라고도 하기도 하지만 장미도 달라고 한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장미는 품위(品位)와 인정(人情), 존중(尊重)을 이런 것들이며, 이것이 선배시민이 바라는 장미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빵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장미도 필요하다.
유범상 교수는 인간(人間)에게는 빵과 장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의 노인들에게는 빵도 없고 장미도 없다고 말한다. 유범상 교수는 빵과 장미도 없는 우리 한국의 노인들은 3가지 점에서 위험에 처해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가 그 생존(生存)의 위기이다. 우리 한국에서는 거의 한 45%가 노인 빈곤율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압도적인 1위이다. 두 번째가 인정(認定)의 위기이다. 이것은 ‘늙으면 죽어야지,하는 잉여 인간’이다. 그리고 ‘사회적인 짐’으로 노인이 취급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인은 비존재이다.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존재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세 번째 위기가 바로 우정(友情)의 위기이다. 우정의 위기는 이제 가족들 간의 관계에서 천덕꾸러기가 된다. 그다음에 이제 바깥에 나와서 노인들을 만나보면 노인 중에 빈부격차가 심하다. 그래서 그 노인들 간에도 우정이 생기질 않는다.
결국, 한국 노인의 노년은 생존의 위기, 그다음에 인정과 우정의 위기, 즉, 실존의 위기에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노인이란 사회활동에서 정년(丁年)을 맞아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려는 사람으로서의 “이젠 사람도 아니다”라는 자학의 「No인(人)」인가, 아니면 정년을 맞이할 때까지 각 분야에서 경험하고 느낀 삶의 지혜(智惠)의 보고(寶庫)로써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Know인(人)」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 제기로 도출된 호칭이 바로 「선배시민」이다.
노인을 선배 시민으로 스스로 호칭하든 남이 그렇게 호칭해주기를 바라든, 삶의 지혜의 보고로써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움직임이 선배시민이라는 호칭(呼稱)이 아닌가하는 공감을 한다. 그런 선배 시민으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생(生)의 마지막 부분을 슬기롭게 생활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할까를 생각해 보게 한다.
그래서 함께 생각해보자는 의도로 “슬기로운 선배시민 생활”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굉장히 선구자 역할을 해 주는 교수라고 인정(認定)하고 싶다. 요약하자면, 직장이나 조직에서 각자의 위치에 맞는 장(長)을 달았든, 농부로서 농사를 잘 지었든, 혹은 그것도 아니었든, 건강하게 정년의 퇴직인 노년을 맞이했다는 것은, 너나없이 같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니 굳이 나이를 따져 위아래의 서열과 계층을 굳이 만들 필요없이 『하나의 인격체로 서로를 존중하고 친구(親舊)가 되어 생의 마지막까지 친구로 지낼 수 있기를 소망(所望)해 보는 것』이 선배시민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청어; Herring
【청어목 청어과에 속한 바닷물고기 /청년처럼 사는 어르신】
요즈음 내가 조금은 시더스 때문에 정신적(精神的)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사천에 사는 빈재민 사장님이 응원의 메시지를 카톡으로 보내주셨는데 그 글을 읽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내어 다시 방송(放送)도 하고 글도 쓴다. 내게는 참 고마운 내용이라 칼럼에 함께 공유해본다. 나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이 있다면, 위안이 되며 다시 활기를 되찾는 피로 회복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청어는 청년(靑年)처럼 사는 어르신”을 말한다면서 글이 시작된다.
나이 80·90·100세 되어도 청년(靑年)처럼 사는 어르신을 줄여서 ‘청어’라고 한다. 청어(靑魚)는 나도 모르게 존경심이 우러나는 어르신으로 긍정적인 열정과 미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청어 DNA’를 심고 잘 가꿔야 내 마음속 청어 떼가 뛰논다고 생각한다. 건강(健康)백세(百歲)라는 말이 실감 나는 세상이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은 올해 104세이신데, 늘 열심히 강의하고 신문 칼럼을 쓰신다. 요즘도 서울뿐 아니라 지방까지 강의가 있어 KTX를 타러 서울역에 자주 가신다고 한다.
100세가 넘으신 분이 서울에서 저녁 강의를 하고 곧바로 열차로 포항에 가서 잠깐 주무시고 조찬 강의를 하신다니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청어(靑魚)처럼 사는 또 다른 사람은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님이다. 지난해 말에 ‘길을 묻다’라는 자전적(自傳的) 책을 내셨는데 큰 화제가 됐다. 시골 소녀가 큰 뜻을 품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가고, 미국 유학 후에는 귀국하여 길병원을 열어 의술을 펼친 이야기부터 가천대를 명문(名門)대로 키우기까지 진솔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총장의 인생 철학은 “박애(博愛)”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꾸준히 박애를 실천하려면 먼저 스스로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 총장은 남들보다 수십 배 더 노력하며 역량과 성과를 쌓아온 분이다. 도전과 열정의 화신이다. 이길녀 총장은 젊은이와 대화를 좋아한다. 대화 내용도 70% 이상이 미래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人工知能)(AI) 시대에 새로운 인재 교육의 방향, 새롭게 펼쳐지는 바이오 산업과 우주산업, 대학의 미래상 등을 이야기하고 끝없이 질문(質問)한단다. 그녀의 나이는 올해 92세이다.
나이가 80~90세가 되어도 청년처럼 사는 분이 늘어난다. 넓고 푸른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는 등푸른 생선, 청어(靑魚)가 저절로 떠 오른다. 청년처럼 사는 어르신 ‘청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존경심이 우러나오고 힘이 솟는다. 현존하는 사람 중 어떤 분이 청어일까 꼽아봤다. 한국의 ‘탑건’이라는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이며 보수당 원로 신영균 선생님(94세), 국민 건강을 위해 세라토닌 문화(文化)를 이끄시는 이시형 박사님(90세), 세라토닌은 주로 우리가 안정되고 평온한 기본을 느낄 때 활동하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조용한 음악을 듣고 있을 때 세라토인이 작용해서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즉, 행복 호르몬이라 불린다. 활기찬 목소리로 가요무대를 진행하시는 김동건 아나운서님(85세), 봉사 활동을 활발히 하시며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김상희 가수님(82세), 올해도 현역 최고령으로 연예인 골프대회에 참가한 국민배우 이순재님(89세) 등이 모두 청어로 부를 만한 분이다. 이들의 공통점(共通點)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으로 자세히 살펴봤더니 몇 가지가 나왔다. 첫째, 늘 미래에 대한 호기심(好奇心)이 강하다. 둘째, 공익적이고 이타심이 크다. 셋째, 긍정적이고 잘 웃는다.
나이 들었다고 과거 전성기 추억을 먹고 살면 청어가 아니다. 자기 혼자 잘 되겠다고 열심히 살아도 청어가 될 수 없다. 긍정적 열정이 식으면 더 이상 청어가 아니다. 나이 들어 갑자기 청바지를 입는다고 청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청어가 되려면 젊은 시절(時節)부터 몸과 마음에 청어 DNA를 심고 가꿔야 한다. 이게 내가 찾아낸 ‘청어로 사는 방법’이다. 매력적인 시니어가 넘치도록 많은 사회(社會)가 좋은 사회다.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며 세상(世上)을 위해 활기차게 활동하는 분이 많으면 이 자체가 젊은이들에게는 희망(希望)의 메시지가 아니겠는가?
누구나 청어로 살고 싶다. 끝없이 다가오는 미래라는 바다를 향해 힘차게 헤엄치고 싶어한다. 이 글을 보내 주신 빈재민 사장님께 진심(眞心)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며칠전 대전 유성구에서 김동수 의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들린 곳에서 “선배시민” 이야기를 듣고 바로 이어 “청어”라는 글을 접하고 내 삶에 변화(變化)가 일어나는 것 같다. 요즘 내 마음속에는 청어떼가 뛰놀고 있다. 독자(讀者) 여러분의 마음 속에도 청어떼가 펄쩍펄쩍 뛰는 에너지가 넘치기를 기원(祈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