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es spring come to the stolen field?

일제(日帝) 36년 식민지(植民地)하에서 살았던 민족의 저항(抵抗)시인 이상화(1901-1943)는 26살의 청년의 나이인 1926년 6월 '개벽' 70호에 발표했던 이상화에게는 토해도 토해도 다 토해낼 수 없는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이었을 것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는 학창(學窓)시절(時節) 얼마나 많이 외우고 외웠던 시였던가! 나 역시도 학창시절에 그 긴 시를 줄줄 외우곤 했던 시이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저절로 나오지만 한 번 더 독자(讀者)들을 위해서 대구 수성못 입구에 세워둔 비석을 보여주고 싶다.
적어도 나라 잃은 국민의 가슴속에 울분이 치밀어 올랐던 시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즈음 좌우(左右) 진영을 떠나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한민국(大韓民國) 대통령이 관저에서 체포되어 지금까지 서울 구치소에 들어가 헌법재판소(憲法裁判所)의 심리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국민을 인도하고 지키고 지도해야 하는 국무총리, 행안부 장관 등 수십 명이 국무위원(國務委員)과 검사(劍士), 판사(判事)들이 직무정지(職務停止) 또는 구속(拘束)이 되어있고 심지어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 전쟁이 일어나면 대한민국 국민을 북한군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책임자인 국방(國防)부 장관까지 내란죄로 투옥 시켰다.
세월이 지나면, 옥석이 가려지고 대통령이 내란인지,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이 내란(內亂)인지 밝혀지겠지만, 국민이 느끼고 있는 현실의 불안감은 양 진영으로 나뉘어 대통령 탄핵(彈劾)찬성과 반대로 광화문과 여의도도 부족하여 각 시에 모여 윤석열 대통령을 구속·석방하라고 외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지경이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필자의 생각은 대통령은 내란죄(內亂罪), 외환죄(外患罪)가 아니고서는 현직 대통령일 때는 수사하거나 체포할 수가 없다.
24년 12월 3일 밤, 필자 역시도 놀랬다. 왜냐하면, 군 생활을 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왜 계엄령(戒嚴令)을 선포했지? 의아했었지만, 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선포이유를 끝까지 들어 본 이후에는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탄핵(彈劾) 인용은 박근혜 전 대통령뿐이었고, 탄핵 의결은 고)노무현대통령 뿐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다수(多數)의석 민주당이 탄핵한 인원은 29명이었고 실제 삭감된 25년도 예산 내용은 아래 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물론, 필자는 윤대통령을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게 뭐지? 경찰, 군인, 법원이 누구의 명령(命令)을 따르고 있지?.” 하는 내면적(內面的)인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법학과 학생일 때 배운 법과 지금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과의 갈등(葛藤)을 느끼면서, 어서 속히 이 불안한 정세가 지나가길 바라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필자의 배운 대로의 생각은 비상계엄(非常戒嚴) 선포는 유일하게 대통령(大統領)만이 할 수 있고 대통령의 고도 정치 행위라고 볼 때, 국헌(國憲)을 문란(紊亂)할 목적(目的)이 없는 이상은 내란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하고 있다.
【1926년 〈개벽〉 6월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지은이의 반일 민족의식을 표현한 대표시로 비탄과 허무, 저항과 애탄이 깔려 있다. 국토는 잠시 빼앗겼을망정 우리에게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봄'은 빼앗길 수 없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전시상황이나 그의 준한 상황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볼 것이 아니다. 가령 사이버 전쟁처럼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통령이 수많은 정보와 상황을 고려해서 심사숙고(深思熟考) 후에 내리는 판단하기 때문에 사법부(司法府)의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이인호, 김학성 등의 헌법 학자(學者)의 판단이고 필자 역시 동의한다.
일제강점(日帝强占)기의 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상화 시인은 1901년에 태어나서 실컷 고생만 하다가 42세의 나이에 요절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2년만 더 살았더라면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기쁨을 맛보았을 것인데 말이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수사할 권한(權限)이 없는 공수처의 체포(逮捕)영장 청구, 관할법원(管轄法院)을 벗어난 서울서부지법에 의한 체포영장 발부, 수사 내용도 없이 기소한 검찰, 그리고 헌법 재판관 구성에서 정치이념(政治理念)이 같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던 재판관이 3명이 재판 공정성 문제(問題)가 이슈가 되고 있다. 하여간 복잡하기 그지없고 정치적 이념으로 양분화 되어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지금은 필자나 모든 국민이 어찌할 수 없는 작금(昨今)의 현실을 두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 36년 식민지(植民地) 시대의 암울했던 상황이 왜 떠오르게 되는 것일까? 지금 대한민국은 전 세계(世界)가 지켜보고 있기도 하고 국격이 말이 아니다.
나라가 온통 암울하다. 필자만이 느끼는 것이 아님을 전국에 2030세대까지 외치고 있고, 국민(國民)이 깨어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다수결(多數決) 원칙(原則)이 꼭 민주적인 것이 아니라는 큰 교훈(敎訓)을 얻었다.
국민의 힘 의원들을 지켜보면서는 주군이 힘이 없어질 상황에 오니 “배신”이라는 단어 뜻을 깊이 체험했고, 난세(亂世)에 옥석(玉石)이 가려지는 것을 국민이 보게 되었다. 민주당을 보면서는 정말 단합(團合)이 잘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국민의 힘은 민주당 반만 닮기라도 하면 다음 선거 때에도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인데 왜 저럴까? 하는 희한한 감정을 체험하게 되었다. 요즈음 유행하는 영어(英語) 구호가 있다. “Stop the steal !”이다. “내 표 훔치지 마”라는 뜻이다.
부정선거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던 이야기다. 200년 역사인 미국(美國)도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한다. 선거는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 국가에서 주권자(主權者)인 국민의 신성 하고도, 소중한 권리(權利)행사(行事)이다. 내 표를 아니, 내가 표로써 행사한 선택권(選擇權)을 훔쳐 간 사람을 알았다면 기분이 어떠하겠는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언론사의 기사에서는 국회의원(國會議員)중 사전투표 조작으로 53명의 당선자가 바뀌었다고 한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사전투표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 대신에 본투표 당일의 시간을 밤 10까지 혹은 자정까지 해서라도 당일투표로 끝내고, 좀 늦더라도 각 투표소 현장(現場)에서 수개표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해 왔다. 반드시 수개표 제도로 바뀌어야 부정선거의 오점을 남길 확률이 현저히 줄어 들 것을 확신한다.
선관위도 이번 계기를 통하여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 행사가 아닌 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으로 거듭나서 한 점의 의혹이 없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최고(最高)의 재판소이고 국민으로부터 무한 신뢰(信賴)를 받아왔다. 아니, 필자 조차도 헌법재판소의 권위와 판단을 최고로 믿어왔었다. 하지만,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결의 이후 진행되는 일련의 절차를 보고 헌법 재판관의 개인적인 정치(政治)성향(性向)이 드러남으로 인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400여 명의 우리법연구회 구성원이 어떤 이념을 갖고있나를 확인(確認)하면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구심(疑懼心)을 갖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말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깊은 뜻을 더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참으로 슬픈 마음이 든다. 나라가 걱정이다. 국민들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는 부르짖음을 듣고 있는 헌법(憲法)재판관(裁判官)들에게 고한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 헌법재판소에 내란죄(內亂罪)를 철회한다고 하니, 부디 기각하고 대통령 임기 후 사법부(司法府)의 재판을 받게 하기를 바란다. 그리 아니 할지라도 정치적 이념을 넘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법과 양심” 그리고 “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이 납득(納得)할 수 있는 판결을 하여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를 회복(回復)해서 국민으로부터 존경(尊敬)받은 명실상부한 헌법재판소로 거듭나기를 간절(懇切)히 바란다.
작금의 현실과 비교도 안 되는 것임을 알지만, 일제 식민지하에 민족저항 시인 이상화 선생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가 생각날 정도로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 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문득, 윤동주 시인(詩人)의 싯구가 떠오른다.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아련히 흐르는 저 달빛 사이로…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