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란 손수건은 용서(容恕)와 포용(包容)과 사랑의 표현이다. 오늘은 불기(佛紀) 2567년 석가 탄신일이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 요식에 참석에 앞서 페이스북에 남긴 축전(祝電) 형식(型式)의 기념 메시지를 통해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국민 모두에게 함께하길 바란다”, 그리고 “따스한 온기가 우리의 이웃들에게 널리 스며들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노력(努力)하겠다”고 밝히고 기념식(記念式)에도 참석했다.
구약시대(舊約時代) 말라기 선지자(先知者)를 보내신 이후에 400년 동안 불순종과 죄악으로 어두웠던 이 땅이 절망(切望)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가지시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救援)을 베푸셨던 것처럼 오늘 하루만큼은 보리수 아래에서 득도(得度)하여 많은 제자에게 전했던 석가모니의 자비심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속에 가득하길 바란다.
23년 한 해도 벌써 반년이 지나는 계절의 여왕 5월 27일이다. 필자는 6월호의 독자들이 아래의 글을 읽고 감동(感動)이 되어 아래 이야기에 나오는 버스를 탄 승객들처럼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소외(疏外)되어 외롭고 힘든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觀心)을 가지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 뉴욕에서 플로리다 해변으로 가는 버스에 활달한 세 쌍의 젊은 남녀(男女)가 탔다. 승객이 모두 타자 버스는 곧 출발했다. 세 쌍의 남녀들은 여행의 기분에 취해 한참을 떠들고 웃어 대다가 시간이 지나자 점점 조용해졌다. 그들 앞자리에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다. 무거운 침묵(沈默), 수염이 덥수룩한 표정(表情) 없는 얼굴…
젊은이들은 그 사내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일까? 배를 타던 선장?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역(退役) 군인? 일행 중 한 여자가 용기(勇氣)를 내어 그에게 말을 붙였다. 그에게는 깊은 우수의 그림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포도주 좀 드시겠어요?” “고맙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다시 무거운 침묵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었다. 버스는 휴게소에 섰고 어젯밤 말을 붙였던 여자가 그 사내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는 수줍은 표정을 보이면서 자리를 함께했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고 젊은 여자는 그의 옆자리에 가 앉았다. 얼마 후 사내는 여자의 집요한 관심에 항복(降伏)했다는 듯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빙고’였으며, 지난 4년 동안 뉴욕의 교도소(矯導所)에서 징역살이하고 이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소. 나는 부끄러운 죄를 짓고 오랜 시간 집에 돌아갈 수 없으니, 만약 나를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되거나 혼자 사는 그것이 고생된다고 생각하면 나를 잊어 달라고 했소. 재혼(再婚)해도 좋다고 했소. 편지를 안 해도 좋다고 했소. 그 뒤로 아내는 편지하지 않았소. 3년 반 동안이나…. 석방을 앞두고 나는 아내에게 다시 편지를 썼소. 우리가 살던 마을 어귀에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가 있소. 나는 편지에서 만일 나를 용서(容恕)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그 참나무에 리본을 달아달라고 말했소. 만일 아내가 재혼했거나 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손수건을 달아놓지 말아요. 그러면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가버릴거요! 라고”
그의 얼굴이 그렇게 굳어져 있었던 것은 거의 4년간이나 소식이 끊긴 아내가 자기를 받아줄 것인가? 하는 불안감(不安感) 때문이었던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물론이고, 그녀의 일행들도 이제 잠시 뒤에 전개될 광경에 대해 궁금해 하며 가슴을 조이게 되었다. 이야기는 다른 승객(乘客)들에게도 전해져 버스 안은 설렘과 긴장감과 함께 빙고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빙고는 흥분한 표정을 보이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굳어진 얼굴에서 깊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는 이제 곧 눈앞에 나타날 실망(失望)의 순간을 대비하며 마음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을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20마일, 15마일, 10마일, 5마일…
물을 끼얹은 듯 버스 안은 정적(情迹)이 감돌았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이 꿈결에서처럼 아스라하게 일정(一定)한 리듬으로 고막을 두드리고 있었다. 승객들은 모두 창가로 몰려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드디어 버스가 마을을 향해 산모퉁이를 돌았다.
바로 그때 ‘와~!’젊은이들의 함성(喊聲)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버스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오래된 참나무(old oak tree)는 온통 노란 리본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20개, 30개, 아니, 수백 개의 노란 리본보다 더 큰 손수건이 물결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혹시라도 남편(男便)이 손수건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까 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참나무를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장식(葬式)해 놓은 것이었다.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빙고 한 사람뿐 그는 넋 잃은 사람처럼 자리에 멍하니 앉아 차창 밖의 참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빙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늙은 전과자(前科者)는 승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버스 앞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이 이야기는 미국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피트 하밀이 뉴욕포스트에 게재한 ‘고잉 홈(Going home)’이란 제목(題目)의 글이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1973년 Tony Olando & Dawn이 만든 노래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Tie a yellow ribbon around the old oak tree’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를 기록하면서 모두가 기억하는 감동 스토리로 남아 있게 되었다.
노란 손수건은 용서(容恕)와 포용(包容)과 사랑의 표현이다. 부끄러운 과거를 용서해 주고 고달픈 세월을 마다하지 않고 남편을 기다려준 아내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다.
♬ I'm coming home I've done my time. (나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If you still want me, 당신이 아직도 나를 원한다면, Tie a yellow ribbon around the old oak tree. 그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 한 개를 달아주세요. ♬
1979년 이란의 팔레비 왕조(王朝)를 무너뜨린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大使館)에서 일하던 미국인 50여 명이 인질로 억류되었는데, 당시 인질로 붙잡힌 한 외교관의 아내가 남편이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염원을 담아 노란 리본을 집 앞 나무에 매달았고, 이 소식이 언론(言論)을 통해 알려지면서 미국 전역에 인질들을 조기 석방하여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 캠페인이 확산되기도 했다. 그 뒤에도 노란 리본은 걸프전과 이라크전 등 전쟁터로 떠난 군인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는 상징으로 사용됐다. 무조건 정치적인 대립으로 뜻 없이 생각 없이 이슈화하기보다 실제적인 노란 리본의 숭고(崇古)한 뜻을 되새겨 보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 되었으면 한다. 인생(人生)에서 가장 소중한 것! 미국의 심장부(心臟部)를 강타한 9.11 항공기 테러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피해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메시지는 사업이나 회사의 프로젝트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남긴 메시지는 하나같이 가족에게 남긴 사랑의 고백이었다. “여보, 난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當身)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 부디, 애들하고 행복하게 살아”많은 사람이 일에 치여 가족도 잊은 듯 바쁘게 살아가지만, 목숨이 1분도 채 남아 있지 않았을 때는 결국 가족(家族)을 찾는다는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여보, 나의 아이들아! 그렇다.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보람은 일이나 성공이 아니라 가족이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아무리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해도 가족(家族)보다 더 중요(重要)한 것은 없다.
소설가 신달자 씨가 어느 라디오 대담에서 이런 말을 했다. “9년간의 시부모 병시중과 24년을 남편 병시중을 했고, 끝내 남편은 그렇게 죽었다. 일생(一生)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창밖에 비가 와서 “어머, 비가 오네요”하고 뒤돌아보니 그 일상적(日常的)인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제야 남편(男便)의 존재(存在)가 자기에게 무엇을 해 주어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함으로 고마운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한 말은 “가족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당신은 세상(世上)에서 가장 행복(幸福)한 사람입니다.”이 글을 읽고 찡한 느낌이 있으셨다면 여러분들은 감성(感性)이 살아있는 분들이다. 여러분들의 가슴에도 초등학교 입학식 때 왼쪽 가슴에 달았던 노란 손수건을 오늘 하루만 달아 보면 어떨까?
나도 오늘은 가볍게 산책을 하고 오랜만에 대구시(大邱市) 칠성시장에 들러 눈요기도 하고, 갈치찌게도 먹어볼까 한다. Have a nice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