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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語學)의 천재(天才)

어학(語學)의 천재(天才)
정성구

카이퍼와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은 아무런 관련(關聯)이 없다. 카이퍼(A. Kuyper) 박사(博士)가 네덜란드의 수상직에서 물러나던 해인 1905년에 이승만은 조지 워싱턴 대학(大學)에 들어갔다.
두 분의 만남이 없을지라도 이승만은 프린스턴 신학교(神學校) 재학 시절(時節)에 간접적으로 카이퍼의 사상과 마주하게 된다. 당시 카이퍼는 네덜란드의 ARP 정당(政黨)의 당수였는데 프린스턴 신학교의 B.B Warfield가 그를 초청(招請)했다. 그래서 이른바 라는 강의 시간에 카이퍼는 이라는 주제로 한 주 동안 강의(講義)를 하였다.
이러한 카이퍼의 칼빈주의적 신학(神學)과 세계관의 강의는 프린스턴 신학교에 새로운 돌풍을 가져온다. 이때 이승만은 카이퍼의 <칼빈주의 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당시 유럽의 상황은 <계몽주의(啓蒙主義)> <합리주의(合理主義)> <과학주의(科學主義)> <진화론(珍話論) 사상(思想)>으로 국가나 사회가 엉망진창이 되어있을 때였다. 이때 카이퍼는 독보적(獨步的)으로, 시대의 대안으로 칼빈주의 사상이론을 내어놓았다. 그는 종교개혁자(宗敎改革者) 요한 칼빈의 사상을 재건하고 부활시키되 그 사상에 단순히 정통신앙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榮光)과 주권이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친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들고 나와 창조주(創造主)요, 구속주요, 심판주로서의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世界觀)으로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을 보자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1900~1910년까지 프린스턴은 칼빈주의 사상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승만(李承晩)은 신학을 공부하면서 그린(Greene)이라는 변증학 교수에게 매달려 학점을 땄을뿐 아니라, 박형룡과 한경직의 스승이었던 챨스 어드만(Charles Eerdman) 교수(敎授)로부터 바울 신학(神學)을 공부했다. 그리고 그는 Miller Chapel에서 매일 당대의 대 칼빈주의자였던 B.B Warfield와 Geerhardus Vos 아래서 설교(說敎)를 듣곤 했다. 이승만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학사(學士)와 석사(碩士)와 박사(博士)를 마치고, 더구나 1년 동안 신학을 공부했으니 그는 분명 <어학(語學)의 천재(天才)>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여기서 받은 사상이 바로 칼빈주의 세계관이다. 물론 이승만은 개종 전에 한학(漢學)에 집중했고, 아버지는 유교(儒敎), 어머니는 불교(佛敎)의 배경(背景)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攝理)요 은혜(恩惠)였다. 또한 그는 배제학교 시절 서양 선교사로부터 영어를 배움으로 영어에 통달(通達)할 수 있었고,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된 것은 모두가 익히 하는 이야기이다.
특히 한성(漢城)감옥(監獄)에 6년 가까이 영어(囹圄)의 생활을 할 때 이승만은 영문법(英文法)과 영어회화(英語會話)를 완전히 통달했는데 여기에는 선교사들의 도움이 컸다. 나중에 미국대학 과정을 그리 빨리 마치게 된 것은 바로 그의 어학(語學) 실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영어 실력(實力)은 훗날 미국과 세계 지도자들 앞에서 자유(自由)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독립(獨立)을 호소하는 일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이처럼 이승만이 외교(外交)의 귀재가 된 것은 바로 어학의 실력이었다. 감옥에서 영어사전을 만들던 열정이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설교를 하고 연설을 했다는 것은 어학의 천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不可能)하다. 이번에 상영된 이승만의 일대기를 다룬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이라는 두 편의 다큐 영화가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고 있다.
금번 다큐 영화를 통해 시민들은 이승만(李承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민족(民族)의 영웅(英雄)이요 오늘의 자유민주주의 영웅을 무참히도 짓밟고 왜곡(歪曲)했던 것을 뉘우치면서 하나같이 울먹였다. 참으로 진한 감동(感動)이 오래갈 것 같다. 좌편향 역사(歷史) 선생님들과 정치꾼들이 아무리 역사 왜곡을 한다 할지라도 팩트까지 지울 방법(方法)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영웅(英雄)은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영웅이 되려면 남이 알지 못하는 피나는 노력(努力)은 기본이고, 어학 습득의 천재적인 타고난 소질(素質)이 있어야 한다. 해서 정직하게 말해보자.
외국(外國) 유학(遊學)을 다녀왔다고 해서 그 나라 말로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손가락에 꼽을까 말까 하다. 또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고 말에는 분명(分明)한 애국심과 사상이 들어 있어야 한다. 우리 자유대한민국은 이승만이라는 언어의 천재로 말미암아 지금의 자유대한민국이 세워진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같은 한성감옥 출신 가운데도 <박용만> 같은 사람은 무장병력을 통해서 일제와 싸우겠다는 헛소리로 이승만(李承晩, 1875~1965)에게 욕설과 탄핵을 보낸 사실이 있다. 이승만의 유창한 영어로 국제무대에서 외교(外交)를 통한 독립투쟁이 없었다면 자유대한민국은 없었다. 사실 인류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대중의 데모나 악의에 찬 군중들이 이끄는 것이 아니고, 뛰어난 국가적(國家的) 천재로 헌신 된 분이다.
16세기에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도 병약(病弱)했지만, 그 시대에 칼빈은 어학의 천재였다. 그는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불어 등 당대 최고(最高)의 권위자였다. 그는 해박한 어학 실력으로 고전을 바로 깨닫고 유려한 라틴어로 기독교(基督敎) 강요(綱要)를 써서 당대의 지성계를 뒤집고 세속화된 로마 카톨릭을 개혁(改革)하여 오늘의 개혁교회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한 사람의 어학 천재가 나라를 바꾸고 세상(世上)을 바꾼 것이다.
특히, 아브라함 카이퍼 박사도 당대(當代)의 최고의 언어학자였다. 그는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불어, 영어, 네덜란드 어에 천재였고, 더구나 대학 중에 신학과 문학(文學)을 동시에 공부했기에 그의 설교는 늘 웅장하고 연설도 대단했다.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서 일간지(日刊紙)와 주간지(週刊誌)의 명 칼럼을 매일 같이 쏟아내고 시민(市民)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리는 <건국(建國) 전쟁(戰爭)>이나 <기적의 시작>이란 이승만 박사(博士)의 독립(獨立) 투사의 행적을 보고 모두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가 배제 학당에서 영어(英語)를 공부한 것과 한성감옥에서 6년의 가장 절망적 상황에서 영어를 통달한 사건은 영웅(英雄)을 만들기 위한 기초(基礎)였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한성감옥은 이승만의 <외국어(外國語) 대학교(大學校)>였고 <고난의 신학교>였다! 앞서 말하기를 카이퍼와 이승만은 서로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었다. 그런데도 이 두 분은 공통점(共通點)이 있다.
첫째는 그 두 분은 당시에 최고의 지성과 학력(學歷)을 가졌다는 것이고, 둘째는 나라가 거의 절망에 빠져있을 때, 나라를 건져서 새로운 세계(世界)를 향하도록 한 것이다. 셋째는 명연설가요, 명 설교가로서 민족을 깨우고 새로운 방향(方向)을 세우도록 한 것이고, 넷째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생명 걸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소망(所望)이 있었다. 그들의 사역은 정권을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의 교회를 통해서 든든한 나라를 세우고 자유(自由)와 평등의 가치를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두 분은 철저한 반공주의 노선(路線)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란서 혁명(革命)과 칼 맑스에 의해 촉발된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이론의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는 러시아가 레닌과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서 1917년에 공산당의 나라가 되자, 온 세상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붉게 물들고 말았다.
동구의 모든 나라가 공산화되었고 러시아의 영향(影響)을 받은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공산주의는 자신들의 혁명완수(革命頑守)를 위해 무고한 인민들을 수천만, 수억만 명을 죽였다. 공산주의는 허울 좋은 이상국가(理想國家)로 내세우면서 철저히 죽이고, 거짓말로 당을 지키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공산당은 유토피아를 내어놓았지만, 실상은 공산당(共産黨)에 반대하면 아무런 재판 없이 죽이는 한마디로 <도살국가>였다.
그들은 불평등(不平等)을 해소한다는 구호로 노동자(勞動者)와 농민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려고 <평등>이란 말을 도입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단(處斷)하는 무서운 집단이었다.사상이 다르면 생각이 다를 것이고 생각이 다르면 삶이 달라지게 되어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과정(科程)에 전 세계는 공산주의들의 세상이 되어 판을 치고 있었다.
소련의 돈뭉치를 받아먹은 우리나라 독립운동(獨立運動)가들 중 일부도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상해 임시정부(臨時政府) 안에서도 지도자들의 러시아가 보내준 사탕발림의 루블화를 꿀꺽꿀꺽 삼켰다. 그 돈이 원만하게 배달이 되지 않고 착복(着服)을 하니 서로 미워하고 배척했다. 하지만,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이 소련의 사탕발림의 자금을 손절 하자, 상해 임정 요원들은 되려 이승만을 탄핵(彈劾)하기에 이르렀다.
이승만은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지 6년 만에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社會主義), 무정부주의 자들을 한통속으로 보고, 1926년 벌써 공산주의 문제점(問題點)을 드러내는 당부당(當不當)을 논리적으로 소논문을 발표했었다. 일찍이 이승만은 <공산당은 호열자다. 인간은 호열자와 같이 살 수 없다>라고 했고, 세계적인 석학이자 구 소련의 작가 솔제니친(A. Solzhenitsyn)은 <공산주의는 치료(治療)할 수 없는 미치광이 병>이라고 했다. 이렇듯 공산주의 실험은 벌써 끝났다.
한 세기 전에 이승만은 공산주의를 비판(批判)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예지를 갖고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이다. 필자(筆者)가 1986년에 헝가리를 방문했을 때, 시골의 한 농부(農夫) 집에서 식사 중에 그는 내게 <조지오웰의 동물 동장이 바로 과거 공산당(共産黨)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노동자(勞動者) 해방을 구호로 내세운 공산혁명이 성공(成功)한 나라는 모두 독재국가가 되었고 개인숭배를 체계화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스탈린과 모택동이 그러했고, 김일성 3대 세습(世習)이 그러했다. 특별히 <종교(宗敎)는 아편이다!>라고 하여 종교 탄압을 극대화(極大化)했다.
옛 소련은 공산혁명 후에 기독교인 2700만 명을 학살(虐殺)했고, 그 외에도 공산당을 반대하는 동족을 7000만 명을 학살했다. 중국 공산당의 모택동은 <대약진 운동>을 한다는 명분(名分)으로 4000여 명을 굶겨 죽였고, 베트남이 공산화된 이후에 약 200만 명이 살해되었다. 캄보디아도 폴포트에 의해 200만 명의 주민(住民)이 학살(虐殺)당하고 3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캄보디아는 학살된 유골(遺骨)을 모아둔 전시장이 지금은 관광자원(觀光資源)이 되고 있다.
나는 그 비참한 장면(場面)을 보고 참으로 공산주의 사상이란 얼마나 무서운지를 똑바로 깨닫게 되었다. 북한도 고난의 행군(行軍) 기간에 3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오늘날도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하면 노동교화소로 보내어지고 총살(銃殺)로 다스려지는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평등이란 모든 사람이 추구(追求)하는 것이지만, 가진 자를 빼앗아 가난한 자를 준다는 이런 논리는 틀렸다. 이렇다 보니 공산주의의 최대의 방해자는 바로 기독교였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韓國)의 예루살렘이라는 평양을 이제는 공산주의 운동의 본부로 만들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을 예견한 이승만이 100년 전에 공산주의 위험을 설파(說破)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또한 이승만은 감옥에서 <독립정신>이라는 글에서 <러시아의 음흉한 마수>라고 썼고, <러시아가 요동 반도를 침범함>이라는 글에서는 공산당의 음흉(陰凶)한 계획을 잘 간파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는 목사요, 신학자요, 대설교가요, 연설가요, 당 총재를 지내고 후일에는 수상의 자리에 올라 교회와 사회와 국가(國家)를 개혁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가 소수정당의 당수였을 때, 거대 당의 대표는 뜨룰스트라(Mr. Troelstra)였다.
그는 변호사(辯護士) 출신으로서 사회주의 곧 공산주의 이론에 해박(該博)하였고, 의회에서 카이퍼의 적수가 되었다. 그런데 카이퍼 박사는 뜨룰스트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에 맞짱을 떴다. 카이퍼는 성경(聖經)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개혁주의자로서, 의회가 <혁명>을 예찬하고 막스주의로 넘어가는 것을 묵과(默過)할 수 없었다.
카이퍼는 원래 연설의 달인에다가 웅장하고 논리적인 말을 통해서 왼손에는 포켓 성경을 들고, 사상은 사상으로, 논리는 논리로 대항하면서 뜨룰스트라가 이끄는 사회주의(社會主義) 공산주의의 이론(理論)을 하나씩 격파해가면서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 시장경제(市場經濟), 기독(基督) 입국론(立國論)을 세웠다. 이승만과 카이퍼는 동양(東洋)과 서양(西洋) 서로 반대(反對)편에 서 있었지만, 공산주의를 막아냈다.
내 나이 83세인 지금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 자유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幸福)하다. 자유(自由) 대한민국(大韓民國)이여 영원(永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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