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바위와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 화석 유명
분바위 및 등대 트레킹 각각 약 3시간 소요

소청도는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으로 3시간 정도 걸리는 먼 섬이다. 남한 최서북단 3개 섬인 소청도, 대청도 및 백령도는 경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지질학적으로도 매우 소중하고 신비스러운 섬들이다.
이 중 소청도에는 거대한 백색해안절벽인 소위 ‘분바위 해안’이 유명하다. 분바위는 그 색이 하얗기 때문에 마치 바위에 분을 바른 것 같다 하여 ‘분바위’라고 불린다. 달밤에는 바다에서 바라보았을 때 마치 흰색의 긴 띠가 섬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 하여 ‘월띠’라고도 불린다.
분바위와 월띠는 10억 년 전~5억 4000만 년 전인 신원생대에 생성된 석회암들이 높은 온도로 구워지고 높은 압력으로 뭉쳐서 대리암으로 변하여 만들어진 지질명소이다. 과거 지구의 따뜻한 바다에서 번식한 산호와 같은 생물들의 시체가 쌓여 만들어진 석회암이 고온고압의 환경에서 변성작용을 하여 만들어진 대리암이라 한다.
이 분바위층 사이사이에는 마치 굴껍데기처럼 생긴 암석층이 존재하는데, 이 암석층은 과거 지질시대에 활동한 남조류 박테리아들의 흔적이 굳어져 만들어진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 화석으로, 소청도의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민들은 이 화석을 ‘굴딱지 돌’이라 불렀으며 천연기념물 제 5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 분바위해안에는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이외에도 무지개색줄무늬바위, 입석바위, 코키리바위 등 기암괴석도 많다.
소청도는 작은 섬이라 대중교통이 없다. 행복버스라고 부르는 공영버스가 운영되기는 하지만 주민들만 이용할 수 있으며, 소청도에 두개 밖에 없는 예동마을과 노화동마을만 다닌다.
소청도의 대표적 볼거리는 김대건 신부 동상, 분바위와 소청등대 등인데, 김대건 신부 동상은 예동마을에 있지만 분바위와 등대는 두 곳 각각 섬의 동서끝단에 위치하고 있어 버스 자체가 다니지 않는다. 직접 걸어서 다녀올 수밖에 없다. 분바위 지오트레일은 예동마을-예동포구-분바위탐방로-분바위-분바위갯티길-분바위안내소 코스로 편도 약 2.1km, 분바위 탐사를 얼마나 꼼꼼하게 하느냐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통상 왕복 3시간 이상 걸린다.

소청도에서의 둘째 날. 어제 분바위를 다녀오고 오늘은 정반대방향인 등대를 찾아갈 예정이다.
소청도 서쪽 끝단에 위치한 등대 역시 예동마을에서 편도 2.8km, 오르내림이 있는 경사도로여서 왕복 3시간 이상 잡아야 된다. 숙소인 예동마을에서 탑동선착장 방향으로 넘어가다 보면 고갯마루에서 이정표를 만난다. 좌측, 즉 서쪽 방향으로 노화동마을 1km, 등대 2.7km 거리이다.
등대 방향으로 거의 평지길을 걷다보면 20분쯤 뒤 좌측 노화동으로 내려가는 삼거리에 이른다. 삼거리에는 마을이름과 유래를 적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예부터 갈대가 무성하여 ‘노화동(蘆花洞)’이라 불렸다고 한다.
마을길 초입에는 특히 소청도의 역사적 사실들이 벽화로 소개되어 있다. 소청도는 1750년대 해동지도에 처음 표기되었고, 1816년 9월 1일 맥스웰 함장이 이끄는 영국 함선이 소청도 앞바다에 정박하고 노화동 주민들과 만났는데, 이것이 백령도, 대청도 섬 중 서양과의 최초의 만남이었다고 한다.
노화동마을을 지나 시멘트도로를 계속 걸으면 멀리 섬 끝, 우뚝 서 있는 등대가 그림같이 시야에 들어온다. 등대 가는 길은 섬능선 도로로 외길이다. 좌우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걷다보면 지루할 틈도 없이 등대에 이른다.
소청등대는 1908년에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 설치된 유서 깊은 등대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현재까지 서해 최전방의 등불이 되어 남북한 어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온 곳이다.

소청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예동마을 뒷산(당산)에는 김대건 신부상이 세워져 있다. 이 섬에 김대건 신부 동상이 세워진 것은 1845년 8월 중국 상해에서 신부서품을 받은 후 1846년 4월 중국과 연락차 백령도를 가기 위해 소청도·대청도를 경유, 천주교의 교리를 설파했던 곳이기 때문이라 한다. 김대건 신부는 1821년에 충청도에서 태어나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불과 25세의 나이로 순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다. 김대건 신부 동상 바로 아래에는 성당과 교회가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성당은 신부가 상주하고 있지 않은 공소(公所)이다.
김대건 신부 동상 주변에는 150여 년 된 동백나무 군락지가 발달돼 있는데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된 대청도의 동백나무보다 수령이 오랜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교롭게도 김대건 신부 동상 바로 옆에는 허름한 당집 하나가 있다. 마을의 안녕과 어부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임경업 장군을 모신 당집이다.
예동마을 앞 해안도로에는 소청도의 아픈 역사를 추모하는 위령탑도 세워져 있다.
1945년 10월, 일제가 태평양 전쟁 중에 설치했던 기뢰 3기가 소청도 해안가로 밀려와 이 중 1기는 자연 폭발하였고 2기가 남게 되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던 때라 이를 해체하여 연료로 사용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1기를 해체하여 사용하였고, 10월 9일 마지막 남은 1개를 해체하던 중 주민의 부주의로 기뢰가 폭발하여 무려 67명의 사상자(사망 59,부상 8명)가 발생하였다. 그 폭발음은 소청도를 뒤흔들고 백령도까지 확연히 미쳤다고 한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위령탑을 세웠다.

*소청도 가는 방법은…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소청도-대청도-백령도행 여객선은 하모니플라워호, 코리아킹호, 옹진훼미리호 등이 하루 세번 출항하며 이들은 모두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를 거친다. 하모니플라워호 07:50, 코리아킹호 08:30, 옹진훼미리호 13:00 출항한다. 소청도까지 3시간 걸린다.
*잘 곳· 먹을 곳
-노을민박 032-836-3043 백경민박 032-836-3022 등대민박 032-836-3024
소청도에는 식당이 없다. 민박집에서 식사를 제공한다.
글.사진 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