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에 포함
폐기물 처리계획 수립 등 조건 부과

정부가 원자력발전을 ‘친환경 경제활동’에 포함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사고저항성핵연료(ATF) 등 원전 기술 개발은 ‘진정한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규정하고 원전 건설과 운영은 ‘진정한 친환경은 아니지만, 탄소중립을 위한 과도기적 경제활동’으로 분류했다.
환경부는 원전을 포함하는 녹색분류체계(그린택소노미) 개정안을 9월 20일 공개했다.
현 정부가 탄소중립 달성과 에너지 안보 확보수단으로 원전을 강조해온 터라 ‘녹색분류체계에 원전 포함’은 그간 ‘수순’으로 여겨졌다.
최근 유럽연합(EU)이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면서 우리도 원전을 넣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다만 원전은 ‘안전’과 ‘폐기물’이라는, 해결이 요원한 문제를 안고 있어 녹색분류체계 포함을 두고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녹색분류체계는 어떤 경제활동이 친환경인지 규정한 국가 차원 기준이다. 녹색투자 대상을 선별하는 기준이어서 특히 중요하다. 예컨대 현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은행들은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 경제활동에 저리로 자금을 융자해주고있다.
“원전 포함 방침은 못 바꿔”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을 보면 ‘SMR, 방사성 폐기물을 최소화하면서 전력을 생산·공급하는 차세대 원전, ATF, 방사성폐기물 관리, 우주·해양용 초소형 원전, 내진성능 향상 등 원전 안전성·설비신뢰도 향상 등을 위한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과 관련된 제반 활동’은 ‘녹색부문’에 포함됐다.
국내 녹색분류체계는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으로 나뉜다.
녹색부문은 ‘탄소중립과 환경개선에 기여하는 진정한 녹색경제활동’이다.
‘전력이나 열을 생산·공급하고자 원자력을 이용하는 설비를 구축·운영하는 활동’(원전 신규건설)과 ‘설계수명이 만료된 원전 계속운전을 목적으로 설비를 개조하는 활동’(원전 계속운전)은 전환부문에 들어갔다.
전환부문 규정은 ‘진정한 녹색경제활동은 아니지만,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서 중간과정으로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활동’이다.
원전 신규건설과 계속운전의 경우 ‘2045년까지 건설·계속운전을 허가받은 설비’에 대해서만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는 활동으로 인정한다.
EU와 비슷하게 인정조건도 있다.
신규건설의 경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 계획 존재와 계획 실행을 담보할 법률 제정’, ‘중·저준위 방사서폐기물 처분시설 보유’, ‘최신기술기준 적용과 ATF 사용’, ‘에너지 1kWh(킬로와트시) 생산 시 온실가스 배출량 이산화탄소 환산량 기준100g 이하’,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과 원전 해체 비용 보유’ 등을 충족해야 한다.
계속운영 조건도 신규건설과 같은데 다만 ATF와 관련해 ‘2031년 1월 1일부터 ATF 사용’으로 규정됐다.
EU와 비교했을 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설 확보와 ATF 사용 시점에 여유가 있다. EU는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가동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 계획 수립’과 ‘2025년부터 ATF 사용’을 조건으로 달았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 시점을 명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 환경부는 “정부가 작년 12월 확정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라면서 “세부 계획 이행을 위한 법률 제정을 조건에 포함해 처분시설을 적기에 확보하도록 했다”라고 설명했다.
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엔 ‘부지 선정 절차에 착수하고 20년 안에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고 37년 이내에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한다’라는 방침이 담겼다. 계획대로면 올해 부지 선정에 착수해도 2060년에 운영이 시작된다.
ATF와 관련해선 “국내에서 가장 이르게 상용화될 수 있는 때가 2031년”이라고 설명했다.
ATF는 세계적으로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는데 가장 앞섰다고 평가받는 미국도 2026년에야 상용화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원전을 포함하는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논쟁이 다시 커질 전망이다.
환경단체는 방사성폐기물이라는 위험하고 완전한 처리법을 못 찾은 폐기물이 나오는 원전을 포함하면 ‘그린워싱’(친환경적이지 않으면서 친환경으로 위장하는 행위)을 막겠다는 녹색분류 체계 의미가 완전히 상실된다고 주장한다.
이전 문재인 정부가 작년 녹색분류체계를 발표할 땐 “사회적 합의를 통해 원전을 포함할지 검토하겠다”라고 약속한 이후 새 정부가 별다른 공론화 과정 없이 개정안을 내놨다는 비판도 나온다.
환경부는 이번에 발표한 개정안은 ‘초안’으로 이후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환경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원전을 녹색 분류체계에 포함한다’라는 방침은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작년 12월 환경부가 스스로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해 만들었다’라고 밝힌 녹색분류체계를 9개월 만에 바뀐 정권 눈치를 보며 개정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태계 회복·수출 탄력받을 듯
정부가 9월 20일 ‘친환경 경제활동’ 기준인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을 포함키로 하면서 국내 원전 산업의 생태계 회복에 한층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또 해외에서 원전에 대한 신뢰성 재고로 수출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등 안전에 대한 우려도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 집중에 따른 신재생에너지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환경부는 원전을 포함하는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을 공개했다. 원전이 ‘친환경’ 에너지라는 점을 정부가 공식화한 것이다.
원전업계는 그동안 원전의 녹색분류체계 포함을 줄곧 요구해온 만큼 이번 결정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원전의 녹색분류체계 포함으로 미래 원전 기술개발, 설비투자, 인력양성 등 원전 분야 전반에 대한 투자 유인이 확대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조달 금리 절감 등 기업의 금융애로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원자력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면 금리 인하 등의 혜택이 있어 자금 조달이 더욱 쉬워져 기업들에 큰 도움이 된다”며 “자금 조달이 쉬워지면서 기술개발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고 설비 투자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원전협력업체들에 925억 원 규모의 긴급 일감을 공급하는 등 오는 2025년까지 1조원 이상의 일감을 추가로 발주해 원전 산업의 생태계 회복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원전의 녹색분류체계 포함은 원전 수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은 원자력을 그린에너지로 분류하고 있다고 다른 나라들이 인식하게 되면 원전 수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주한규 교수는 “원전의 K-택소노미 포함으로 노릴 수 있는 가장 큰 효과는 인식 제고”라며 “원자력이 친환경 에너지라는 점을 EU(유럽연합)와 우리 정부 모두 인정함으로써 국민 인식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내년에는 체코와 폴란드 등이 원전 사업자를 선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한국수력원자력이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그러나 정부가 원전 확대에 속도를 내면서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도 재차 부각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방사능 유출 우려와 핵연료 보관 및 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를 위한 부지 선정부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반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장 설치 때도 지역 주민 반대로 매번 홍역을 치르는 상황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를 선정하는 데까지 난항이 불가피해 보인다.
수원환경운동연합 이인신 사무국장은 “EU의택소노미를 한국식으로 들여와 원전을 여기에 포함시킨다는 것인데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엄격한 핵폐기물 처리 기준 등을 갖추고 있어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며 “원전의 안전성을 경시한채 급가속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원전으로 무게가 실리면서 탄소중립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산업부는 지난 8월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오는 2030년에 원전 발전량 목표치를 전체의 32.8%로, 신재생에너지는 21.5%로 제시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당시인 지난해 10월 확정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에 비해 원전은 8.9%포인트(p) 높고 신재생에너지는 8.7%p 낮은 것이다.
이 때 문 에 국 내 재 생 에 너 지 부 족 으 로 RE100(2050년까지 사용 전력을 100%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캠페인) 이행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는 에너지 안보, 탄소중립 실현 등을 위해 재생에너지가 중요한 에너지원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의 RE100이행 등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지속 확대해 나갈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