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는 10월 23일 채권시장 자금경색 상황을 불러온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와 관련, 각각 더불어민주당 출신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와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현 강원도지사를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책임을 돌렸다.
‘레고랜드 사태’는 최근 강원도가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발행한 2050억 원 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지급보증 철회 의사를 밝혔다가 채권시장이 빠르게 경색되는 등 금융 시장에 불안이 번진 것을 일컫는다.
이에 정부 당국은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동원해 회사채, 기업어음(CP) 매입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또, 채권시장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해 50조 이상을 투입할 것과 모든 지자체의 채무지급보증을 확약했다.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레고랜드 사태와 관련, “경제 아마추어리즘으로 무장한 문재인 정권의 ‘퍼주기식 포퓰리즘 리스크’가 채권 시장에 폭탄을 던졌다”며 “그 시발점은 8년 전 최문순 강원도정이 제대로 된 사업성 검토도 없이 무책임하게 밀어붙인 ‘레고랜드 채무 떠안기’”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최문순 도정은 도의회 승인을 생략하고 레고랜드의 2050억 원 채무에 빚보증을 섰다. 이 빚은 고스란히 강원도민의 부담으로 남게 됐다”며 “문재인 정권은 중앙, 지방을 가리지 않고 무분별한 채권 발행, 채무 보증 등을 남발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쇼에 나라의 미래를 팔아넘겼다”고 비판했다.
이어 “시장에서 가장 안정적인 투자처로 알려진 지방채의 신뢰도가 이렇게 흔들리는 것은 지난 5년간 급격하게 증가한 채무 때문”이라며 “지난 5년간 국가부채는 763조 증가했고 지난해 기준 전국 지자체의 지방예산 대비 채무 비율은 10.4%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제 파티는 끝났다. 지난 정권이 비운 나라 곳간을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반드시 채워나가겠다”면서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빚 파티 끝에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 민생경제위기 대책위원회는 긴급 성명서를 통해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지난 9월 28일 레고랜드 사업의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가 10월 21일 다시 채무를 상환하겠다고 번복한 것을 두고 “경제에 무지한 단체장이 오직 정치적 목적으로 전임자 흠집내기에 나섰다가 아무런 실익도 얻지 못하고 국가 경제에 중대한 피해만 입혔다”고 비판했다.
당 대책위는 “김 지사의 경거망동은 가뜩이나 위축된 자금조달 시장에 불신의 망령을 들게 했고, 투자 위축과 유동성 경색이라는 위험천만한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며 “김진태 지사의 2000억 채무 불이행이 2000조 가계부채를 흔드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또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서도 “금융시장이 한 달 전부터 위험 신호를 보냈음에도 야당 탄압에나 몰두하느라 위기를 수수방관한 대통령이 화마를 키웠다”며 “시장이 발작을 일으킨 후에야 늑장 대책, 뒷북 대책, 찔끔 대책을 내놓은 윤석열 정부에 과연 경제위기 극복 의지나 있기는 한 것이냐”고 물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경제위기에 대한 무지·무능·무관심으로 초기 방화벽 구축에 실패하고 선제 대응 시기를 놓친 잘못을 인정하고, 존재감이 실종된 경제수석과 경제금융비서관은 한 달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소상히 해명하라”며 “채권시장의 생명과도 같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경제위기 트리거를 자초한 김 지사는 국민에 공개 사과하고 채무 상환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했다.
김진태 지사 “채권시장 자금 경색 사태 유감”

김진태 강원지사가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자금 경색 사태와 관련해 유감을 표시했다.
김 지사는 10월 2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일로 본의 아니게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자금 시장에 불필요한 혼란과 오해가 초래돼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강원도는 처음부터 보증 채무를 확실히 이행하겠다고 했다”며 “도가 구체적인 변제 일정을 제시했고, 중앙정부도 고강도 대책을 발표했으니 금융시장이 속히 안정을 찾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특히 “보증 채무를 갚는 일정이 조금 앞당겨진 측면이 있지만 언제라도 갚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선후를 달리해 내년 1월까지 갚고, 강원중도개발공사(GJC) 자산을 제대로 팔아 보증 채무를 부담한 것 이상으로 혈세를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다만 GJC 회생 절차는 계속 추진하겠다는 견해를 확인했다.
그는 “회생 신청과 디폴트는 전혀 별개”라며 “회생법 250조에 의하면 ‘회생은 보증 채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로 나와 있다. 회생 신청은 계속 진행이 된다”고 부연했다.
국민의힘, 자성 목소리… “신중 기해야”
여당인 국민의힘이 ‘레고랜드 사태’와 관련해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시장 불안을 야기한 이번 사태와 관련해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동시에 근본적 책임이 전임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에게 있다며 화살을 돌리고는 있지만, 결국 자당 소속 김진태 지사가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곤혹스러움이 묻어난다.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경우, 결국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민심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재정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전임 최문순 도지사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지만, 강원도가 채무이행을 할 수 있음에도 미이행 발표로 불신 키운 데 대해서는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며 김 지사 책임론을 우회적으로 거론했다.
주 원내대표는 “나비의 날개가 태풍을 불러온단 사실을 명심하고 모든 일을 신중하게 처리했으면 좋겠다”며 “이젠 우리가 집권하면 결과의 나쁜 것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일종 정책위 의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단기 자금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전반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는 상황에 대해서 국민의힘은 정부와 함께 더욱 면밀하게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임 도정 잘못 바로잡으려다 ‘오판’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한 데 이어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건설업체들까지 거리로 나서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경제 문제를 정치적 목적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최문순 전 지사 시절에도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사업방식을 두고 여러 차례 경고음이 나왔다는 점에서 정치권에서는 ‘네 탓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GJC 회생 추진에 따라 공사 대금이 제때 지급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자 지역건설업체들은 심각한 경영난을 우려하며 강원도에 대금 지급을 촉구하고 나서는 등 ‘총체적 난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 지사는 취임 이후 전임 도정에서 추진한 레고랜드와 알펜시아 사업과 관련해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에 도는 검토 끝에 ‘회생 신청’ 카드를 꺼내 들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채권시장 자금 경색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도는 자금 경색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억울한 부분도 있다는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회생 신청을 발표할 때부터 보증채무를 이행하겠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했다”며 “보증채무 회피 의사 표시를 안 했기 때문에 채권시장 자금 경색 사태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최문순 전 지사는 10월 2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정확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지 않고 그냥 정치적 목적으로 발표한 것”이라며 “주먹 휘두르고 발길질하다가 헛발질하고 넘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 전 지사는 “그 회사(강원중도개발공사)를 그냥 뒀으면 차차 연장해가면서 빚을 갚아 나갔을 것”이라며 “작게 막을 수 있는 일을 무려 50조원을 투자하는 단계까지 오게 했다”고 비판했다.
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