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많고 순박한 마을, 산업단지로 ‘환골탈태’ 이뤄내
‘교통 이점’ 극대화로 기업 유치 성공… 분양 ‘불티’
10개월 새 인구 5천명 늘어… 젊은층 정착이 관건

전북 전주에 인접한 군(郡) 단위 소도시인 완주. 10개월 연속 이 동네에 사람이 모이고 있다.
인구 증가 추이는 가파르다. 지난해 10월 9만 1711명이었던 인구는 올해 7월 9만 6338명으로, 10개월 새 5000명 가까이 늘었다. 전체 인구의 4.8%에 달한다. 2017년 10월 정점을 찍었던 인구는 줄곧 하락세를 면치 못하다가 최근 반전을 이뤄냈다.
전국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인구 감소에 시달리는 지금, 전북의 작은 지자체 완주는 어떻게 ‘인구 우상향 그래프’를 그려낼 수 있었을까.
시골동네, ‘환골탈태’를 꿈꾸다
“저기 저 짝이 내가 살던 곳이여.”
주민 김모(68) 씨는 지난 8월 2일 공장들이 들어선 완주군 봉동읍 장구리 테크노밸리 제1산업단지 어딘가를 가리키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미 산업화의 한가운데 있는 산업단지에서 2009년 착공 이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씨는 산업단지 외곽을 천천히 돌면서 자신이 살던 예전 마을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기억의 조각이 잘 맞춰지지 않는지 “참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동네였다”고 말하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기도 했다. 김씨가 살던 곳은 주민 수백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봉동읍 원둔산마을.
그의 집 앞마당에 큰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가을 무렵이면 붉게 물든 감을 따 선선한 바람이 부는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았다. 대문 빗장을 열어놓고 이웃들과 편하게 왕래하던 시절이었다.
주민들은 깨, 고추, 생강 농사를 지었다. 작황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가족, 이웃과 나눠 먹으며 더불어 살았다. 정 많고 순박한 이웃이 모여 살던 이 동네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 것은 2008년쯤이다.
당시 임정엽 전 완주군수가 ‘잘 사는 동네’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야심 차게 준비한 게 산업단지였다.
지방 소멸의 위기감이 전국 지자체에 불어닥치는 상황에서 ‘일자리’와 ‘산업기반’이 소멸을 막는 가장 적극적인 대책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완주 여러 부지가 물망에 올랐다. 평지라 개간이 쉽고 완주의 특작물인 생강, 곶감 생산단지가 없는 곳을 골랐다. 기업들이 물류를 실어 나르기 편하도록 가급적 고속도로 옆이어야 했다. 산업단지 조성지로 낙점된 곳은 봉동읍 장구리, 제내리, 둔산리 일대. 원둔산마을, 만동마을, 신우석마을, 역기마을 등 6개 마을이 산단으로 편입됐다. 일찍이 미래 성장의 동력을 기업에서 찾은 임 전 군수는 군비를 편성해 산단 예정 부지의 땅을 사들였다.
인구 증가의 첫발…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작년 3월 준공한 공장입니다.”
수소연료전지의 핵심 소재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 비나텍의 정인수 부장은 지난 8월 4일 전북 완주군 테크노밸리 제2산업단지에 있는 공장을 소개했다.
5만 8000여㎡ 규모의 공장 안에 MEA(지지체 촉매), 코터(cotter) 전극을 만드는 믹서(mixer) 등 이차전지를 제작하는 설비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완주공장 직원들은 매일 설비를 가동하며 휴가도 잊은 채 바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비나텍은 2021년 8월 당시 허허벌판이던 제2산단에서 다른 기업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첫 삽을 떴다.
배터리 소재 기업, 물류 기업 등이 입주를 타진한다는 얘기를 듣고 재빨리 행동에 옮겼다. 회사 임원진이 완주 땅에 욕심을 낸 것이다.
비나텍은 왜 전주에 본사를 두고도 완주에 공장을 지었을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완주의 지리적 이점과 인프라였다.
전주 본사와 최단 거리가 20㎞밖에 되지 않는 데다, 군산항과도 가깝다. 익산IC가 차로 5분 거리에 있어 타지로 나가기도, 들어오기도 쉽다.
평당 50만 원밖에 되지 않는, 경기도 등 수도권보다 훨씬 저렴한 토지 분양가도 투자 결정을 부추겼다. 수소, 탄소 산업을 육성하는 완주군의 경제 정책도 매력적이었다.
완주는 ‘수소특화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선정된 데 이어 수소용품 검사지원센터 구축, 사용 후 연료전지 기반 구축 등을 추진 중이다. 수소 산업에 몸담은 기업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비나텍은 경기도 군포에서 전주로 본사를 이전한 2011년 300억 원대에 불과했던 매출이 지난해 700억 원대로 급성장했다.
정 과장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북분원, 한국탄소산업진흥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전북본부 등은 모두 기업과 공생하는 중요 인프라”라며 “특히 완주의 ‘수소특화 국가산단’은 우리의 요구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완주, ‘기업 유치 성공기’를 쓰다
봉동읍 6개 마을 주민이 소유권을 군에 넘긴 곳이 바로 테크노밸리(1·2산단)와 농공단지다.
교통 편의와 인프라에 매력을 느낀 기업들은 완주군이 주는 각종 혜택을 챙기며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62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의 테크노밸리는 당초부터 친환경 첨단 업종을 들이는 게 목표였다.
완주군은 하나의 거대한 ‘팩토리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시너지를 내는 진풍경을 소망했다.
꿈만 같던 소망은 점차 현실로 다가왔다.
최근 부지 조성이 마무리된 테크노밸리 2산단의 분양률은 80%를 넘어섰다.
현재 테크노밸리에 건물을 올리고 입주한 기업은 12개, 매매계약과 투자협약(MOU)을 맺은 기업까지 포함하면 26개로 늘어난다.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이 필요한 소규모 기업은 전체 면적 9만 평의 농공단지로 입주한다.
중견기업과 달리 1000평 이하가 필요한 작은 기업들에 안성맞춤이다.
농공단지는 분양공고를 시작으로 1년 6개월 만에 분양률 60%를 넘어섰다. 현재 입주한 기업은 19개다. 완주군 관계자는 “특정 분야의 기업이 산업단지로 들어오면 그와 관련한 2, 3차 기업이 딸려 온다”며 “‘밸류 체인’으로 하나의 산업단지가 묶이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완주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오랜 기간 산업단지 조성을 해온 게 지금의 ‘인구 성장’ 완주를 탄생시켰다”고 공조했다.
기업 유치하니 인구도 늘어
테크노밸리, 농공단지의 조성이 끝난 2021∼2022년은 완주의 인구가 바닥을 찍고 우상향을 시작한 시점이다.
완주의 인구 변동 그래프를 보면 2017년 10월(9만 6199명) 정점에서 내리막을 걷다가 2021년(9만 1142명)에 바닥을 쳤다.
그러더니 지난해부터 늘기 시작해 2023년 7월 현재 9만 6338명까지 증가했다.
지방 소도시에서는 보기 드물게 생산가능인구(15∼64세)도 반등했다.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완주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산업단지에 더 입주할 기업이 있고, 추가 고용이 이뤄진다면 완주의 인구 증가 그래프는 더 올라갈 전망이다.
강지숙 원광대 일자리플러스센터장은 “기업 유치로 인한 인구 증가 효과는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며 “완주는 강소기업이 입주한 산업단지로 기업 도시 이미지를 굳혔고, 이를 통해 인구를 늘린 모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더 효과적인 인구 증가를 바란다면 기업 유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주거, 교육, 의료, 치안 등 편하면서도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희태 완주군수는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최근 완주로 유입된 인구는 ‘젊은 층’”이라며 “결국 기업 유치에 따른 일자리 창출이 인구 증가의 기반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노년층의 증가로 인구가 늘어난 게 아니라, 생산 활동이 가능한 인구가 유입됐다는 점에서 완주는 활력 넘치는 도시로 나아갈 것”이라며 “기업으로 유인한 이 인구를 지키는 것도 지자체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완주군은 기업으로 늘린 인구를 행정이 지킬 수 있도록 아이 키우기 부담 없는 돌봄체계 구축, 청년 문화·복지 개선, 귀농·귀촌 활성화 등에 힘을 쏟고 있다.
젊은 층이 지역으로 들어온다고 한들, 보육·문화·복지 인프라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이들을 눌러 앉힐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정근 완주군 미래전략담당관은 “삶의 질 향상에 중점을 둬야 저출산, 고령화에 대응하고 청년 유입 정책도 펼 수 있다”며 “모든 세대가 행복한 완주를 실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