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측 실패로 김포·의정부·용인 등 경전철 사업 ‘파행’
대구·인천·부산 지하철은 적자 ‘눈덩이’… “대책 세워야”

‘지옥철’로 불리는 김포골드라인 사태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혈관과 같은 지방교통 인프라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졸속 추진과 예산 부족으로 부실 사업으로 전락한 도시철도 사업, 승객 요금만으로는 운영이 불가능한 시내·시외버스와 터미널 등의 운영 중단과 폐업 등은 그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4월 20일 오후 6시 30분 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 승강장은 퇴근길 승객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안전요원과 철도 경찰이 밀려드는 승객들을 줄 세우느라 진땀을 뺐지만, 열차가 도착하자 서로 몸이 부딪히는 승객들 사이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며 아수라장이 됐다. 간신히 전동차에 몸을 실은 한 승객은 기자에게 “전철을 이렇게 2량짜리로 작게 만든 사람을 찾아내 꼭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포골드라인에서 열차·승강장 혼잡으로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하는 승객이 잇따라 발생하자, 소방당국은 출근 시간대에 구급차를 전철역에 배치하는 대책까지 내놨다.
대학생 이모(20) 씨는 “열차에 사람이 너무 많아 내릴 때까지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고 숨이 막힌다”며 “버스는 제때 안 오고 도착시간도 예상이 어려워 위험해도 전철을 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구 50만 도시에 2량짜리 경전철 강행
2019년 개통한 김포골드라인이 넘쳐나는 승객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2량짜리 ‘꼬마 열차’로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잘못된 수요예측과 무리한 사업 추진이 꼽힌다. 김포시는 애초 김포골드라인을 경전철(차량편성 2∼6량)이 아니라, 중전철(6∼10량)인 서울 9호선을 김포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막대한 건설비 부담으로 인해 경전철로 사업 방향을 틀었고, 사업 추진을 서두르기 위해 국비 지원 절차도 밟지 않았다.
결국 김포골드라인은 총사업비 1조 5000억 원을 한강신도시 입주민들이 낸 교통분담금 1조 2000억 원과 김포시 예산 3000억 원으로 충당했다.
김포골드라인은 국비 지원이나 지방채 발행 없이 도시철도를 건설한 국내 첫 사례가 됐지만, 예산 부담 때문에 차량 편성을 애초 계획한 4량에서 2량으로 줄이는 악수를 뒀다.
전철역 승강장도 2량 규모(33m)로 건설한 탓에 이제 와서 차량편성을 늘릴 수도 없는 구조다.
김포골드라인을 계획한 시점에는 김포시 인구가 25만 명이었다. 하지만 신도시 개발로 인구가 50만 명으로 늘어날 예정이었던 만큼, 당연히 중전철로 건설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잘못된 수요 예측과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인한 경전철 파행 사례는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2년 개통한 의정부경전철은 김포골드라인과 정반대다. 실제 승객 수가 예상 수요의 40%를 넘지 못해 3600억 원 누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4년 10개월 만에 사업자가 파산했다.
2019년부터 새로운 사업자가 운영하고 있지만, 의정부시는 최소운영비보전(MCC) 협약에 따라 지난해에만 225억 원을 보전해줬다.
2011년 개통한 부산김해경전철은 올해 하루 평균 이용자가 4만 명대에 머물고 있어, 김해시가 매년 500억 원가량의 비용을 지원해야 해 시 재정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용인경전철도 수요예측 실패로 막대한 세금을 낭비한 사례로 꼽힌다.
용인경전철은 2010년 6월 완공됐지만, 용인시와 시행사가 최소수입보장비율(MRG) 등을 놓고 다툼을 벌인 탓에 2013년 4월에야 개통했다.
용인시는 시행사와 벌인 국제중재재판에서 패소해 이자를 포함해 8500억여 원을 물어줬다.
현재도 하루 평균 이용자가 3만5천명가량인 용인경전철에 연간 300억 원가량의 운영비와 함께 경전철 건설 당시 투입된 자금에 대한 원리금 160억 원을 부담하고 있다.
용인시 관계자는 “연간 460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경전철에 투입되고 있지만, 대중교통이라는 공적인 의미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전철 사업뿐 아니라 대도시 도시철도의 적자도 지방재정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인천도시철도의 경우 연간 운영적자가 2020년 1591억 원, 2021년 1782억 원, 지난해 1736억 원에 달한다. 대구도시철도를 운영하는 대구교통공사도 매년 2000억 원 안팎의 순손실을 기록 중이다.
대구도시철도는 2016년 요금 인상 이후 지금까지 요금을 동결한 탓에 수송원가(3615원) 대비 운임(688원)이 19%에 불과해 큰 폭의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도시철도가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큰 부담이 되자, 복지 정책으로 볼 수 있는 ‘65세 이상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분을 정부가 보전해달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 2월 정부에 이 같은 요구를 하면서 지난해 부산도시철도 누적 적자 3449억 원 가운데 무임수송 비용이 1234억 원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다. 도시철도 무임수송은 법령으로 시행하는 보편적 복지정책이어서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게 지자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공익서비스손실보전(PSO)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 간 역할 분담이라는 원칙에 따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구교통공사 관계자는 “만성적인 적자 구조로 인해 도시철도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며 “지자체 혼자서는 해결이 힘든 만큼,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합심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병설 인하대 정책대학원장은 “전국의 동시다발적인 신도시 개발사업 등으로 정확한 교통수요 예측을 기반으로 한 교통 인프라 확충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며 “도시철도는 건설과 운영에서 지자체의 재정 부담이 큰 만큼, 중앙정부의 전향적인 지원 확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TX는 확대일로… 지역 간 시외버스는 ‘축소일로’
지난해 말 성남종합버스터미널 운영업체가 적자를 이유로 폐업한 뒤 임시터미널이 마련됐지만, 이용객 불편이 수개월째 가시지 않고 있다.
임시터미널은 발권기 6대와 간이의자 24대가 놓인 매표소, 도로변 승차장 등으로 이뤄졌다.
천안에 사는 자녀들을 보기 위해 이곳 터미널을 종종 찾는다는 80대 노인은 “매표소는 비좁고, 도로변 승차장은 비가림 지붕이 없어 날씨에 따라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2004년 문을 연 성남종합버스터미널은 수서발 고속열차(SRT) 개통에다가 코로나19까지 겹치며 2019년 하루 평균 6700명이던 승객수가 지금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2700∼3000여 명으로 줄었다.
운행 노선도 쪼그라들어 2021년 말 26개 업체가 운영하던 54개 고속·시외버스 노선이 현재 20개 업체, 33개 노선으로 급감했다.
성남시는 재정 부담을 우려해 시 직영은 엄두를 못 낸 채 터미널 정상화에 노력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성남종합버스터미널처럼 최근 몇 년 새 전국 시외버스터미널의 폐업이 속출하고, 시외버스 노선이 축소되면서 지방 교통의 근간인 시외버스망이 붕괴 위기에 놓였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의 시외버스터미널은 성남종합버스터미널을 포함해 22곳이 폐업해 330곳에서 308곳으로 줄었다.
경북 청송군 주왕산시외버스터미널은 2019년 12월 사업자가 폐업해 지금은 청송군이 외주로 창구 없이 키오스크만을 운영 중이다.
경북 울진군 매화·기성 시외버스터미널도 사업자가 운영을 중단했다. 군은 승차권을 미리 사지 않고도 교통카드 또는 현금 결제로 시외버스에 승차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울산시 서부권에서 부산, 창원, 양산, 김해, 경북 경산 등 인근 지역을 오갈 때 이용하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은 현재 임시터미널로 운영되고 있다.
기존 언양버스터미널은 승객들이 많이 찾는 언양알프스시장과 가까운 곳에서 운영됐는데, 이 터미널을 운영한 민간업체가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지난 2017년 운영을 중단했다.
이에 교통 공백을 우려한 울산시가 언양알프스시장과 400m가량 떨어진 공영주차장에 임시 터미널을 설치했고, 운영은 울산시설공단에 맡겼다.
하지만 임시터미널은 접근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화장실이 터미널 건물에서 50m가량 떨어져 있는 등 시설이 열악하고 불편하다.
부산과 양산을 거쳐 울산을 오가는 시외버스 업체도 다음 달부터 운행을 중단하기로 해 지역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해당 업체는 코로나19 사태와 부산 부전역∼울산 태화강역 동해선 철도 개통으로 승객이 급감하며 적자가 누적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공성 감안한 대책 마련 필요
시외버스·터미널 운영업체들은 지역 간 교통 인프라의 근간인 시외버스망의 공공성을 감안해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버스·지하철 등과 달리 지자체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민간이 운영하는 시외버스나 터미널 대부분 자력으로 버티기 힘들다는 호소다.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 자체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시외버스터미널의 매표 수익은 2017년 대비 8.4% 감소했다.
특히 주요 터미널 50곳의 손익 분석 결과 2020년은 전년 대비 18%, 2021년은 22% 영업손실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업체들은 청소년 요금할인 등으로 발생하는 매표수입 감소분에 대한 재정지원, 재산세 감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재정지원만으로는 사업 운영이 불투명한 터미널에 대해서는 공영화 또는 준공영제 도입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터미널 주기능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수입원 다변화를 위해 편익업종(스크린골프연습장·집배송시설·동물병원·일반숙박시설 등)의 일부 허용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 관계자는 “1960년대 옛 자동차정류장법에 규정됐던 대합실, 매표소, 승하차장의 최소 면적이 아직도 유효해 많은 터미널이 시설을 놀리고 있다”며 “공시지가가 올라 세금은 많이 내고 이용객은 줄어 고사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자체 관계자들도 이들의 주장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
KTX 교통망이 확장일로를 걸으면서 서울-지방 간 교통 인프라는 갈수록 좋아지지만, 지역과 지역을 잇는 교통 인프라는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교통국 관계자는 “지역 간 교통망은 지금 붕괴의 위기에 놓여 있다”며 “지방 교통망의 근간인 시외버스터미널에 대한 각종 규제 개선 등 합리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